오늘부터 미니멀 라이프

어느 날, 서점에서 발견한 책 한권에 꽂혀서 시작된 나의 미니멀라이프.
하지만 그럭저럭 하는 시늉만 낼 뿐, 좀처럼 진도는 나가지 않았고 일상에도 딱히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미니멀리스트인 다른 작가들의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하는 블로거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기 보다는 이론에만 빠삭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내 생활 상에 대한 성찰 없이 책 속 작가나 미니멀리스트 블로거들의 모습을 흉내내려고만 했다.
그들의 심플하면서도 온통 새하얀 집을 보고 우리집에 있던 멀쩡하지만 알록달록한 물건들을 비운 후에는 블로그에서 보았던 '미니멀스러운' 물건들을 잔뜩 사서 '진열'해놓았다.
그렇게 버리고 사는 것을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집은 미니멀스럽게 보이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물건들이 '미니멀'스러워지자 이번에는 집에 비해서 너무 큰 소파, 아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침대, 비싸게 주고 샀지만 몸체가 가벼워서 청소 중에 쓰러지는 청소기 등을 비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고 결국 소파와 청소기와 침대를 없애버렸다.
(현재, 위의 것들은 새 것으로 대체되어 다시 집 한 켠을 차지하고 있고 침대 같은 경우는 하나가 더 늘었다.)
사실 예전부터 나는 물건을 이것저것 사들이는 습관이 있었다.
짠순이 기질은 있었지만 "이 가격에 이 정도면 괜찮네~" 싶은, 소위 가성비 쩌는 물건이나 후기가 좋은 물건들을 내 지갑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마구잡이로 사들였고 심심해서 들린 다이소에서는 빈손으로 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성향은 결혼 후에까지도 이어져서 육아를 하며 살림을 하면서 생필품은 무조건 대용량 벌크나 1+1으로, 사은품을 많이 주는 것으로 사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아를 하면서 생긴 가벼운 우울증이 과소비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한 것도 같다. 종일 우울했지만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면 아주 잠시 동안은 행복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알뜰하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합리적인 소비자는 결코 아니었다.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금전적인 손해도 많이 봤고, 거기에 대해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받아온 어리석은 소비자였고 지금도 여전하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 사색도 없었고 스스로의 원칙을 세우지도 않았다.
나와 가족들의 상황을 따져보지도 않고 그저 다른 미니멀리스트들을 흉내내며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에 접근하기에 급급했다.
신념이 없으니 중심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했지, 정작 내 생활은 미니멀 라이프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저 유행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좇을 뿐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미니멀 라이프든 제로 웨이스트든 이러한 것들에 흥미를 가지는 일은 결국엔 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고 실제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현재'뿐이니 나는 늘 지금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지금부터 미니멀 라이프 :)